전화를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진정이 안되고 떨고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충격적인 일인것이 분명했다. 전화를 건 응급실 간호사는 내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마치 패닉 상태에 빠진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과장님... 빨리 응급실에 와 주세요,,빨리요,, 사람이.. DOA 인데요.. 검안이 필요해서요,,"
그녀는 내가 대체 무슨일이냐는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대개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혹은 수술실과 같은 특수분야 간호사를 몇년 하다보면 그야말로 산전 수전을 다 겪는다, 특히 그중에서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일반인들이 상상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세상에서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비극적인 일은 다 경험하게 되는 곳이다.
그 안에는 절절한 사연과, 비통한 죽음과, 극적인 회생, 그리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극단의 절망과 희망이 모두 교차하는 곳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곳에 들어온 환자는 모두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또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또 누군가의 형제자매요. 친구가 아닌가,, 그래서 응급실에,혹은 중환자실에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드는 환자들의 등에는 그 환자 자신의 아픔외에도, 각자 그 사람의 인연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걱정과,우려,기원들이 덧얹혀 있는 것이다,
그런 응급실에서 몇년을 근무한 간호사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담당과장인 내게 육하원칙에 따른 상황을 전하지 못할 정도로 동요한다는 것은, 지금 응급실에 얼마나 엉청난 사건이 벌어져 있을지를 충분히 짐작케 하는 일이었다,
나는 전화를 던지다시피하고 일단 응급실로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당도한 그곳에는 나로서도 그 충격을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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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두리에 사는 어떤 부부가 일찌기 혼자되신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는 일찌기 남편을 사별하고, 외아들을 혼자서 키우셨지만, 여러가지 형편으로 아들의 경제적 여건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도시 외곽의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와 며느리는 밭 농사를 짓고, 아들은 트럭을 몰고 농수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가 몇 년전부터 치매기운이 조금씩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나마 하루중에 스무시간 정도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시고, 저녁이나 밤무렵에 서너시간 정도만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치매증상을 드러내시곤 하셨다,
이들 부부 입장에서는 아무리 치매가 있으신 노인이라도, 차라리 24시간 완전 치매라면 며느리가 아예 곁에 붙어서 수발을 들겠지만, 대개는 멀쩡하시다가 한번씩 그러시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치매증상이 나타나시면 할머니방에 혼자 계시게하고 문을 잠가 두거나, 아니면 며느리가 곁을 지켰었는데. 그나마 대개 증상이 밤에 나타나셔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밤에는 밖에서 문을 얼어 잠궈두면, 혹시 문제가 생기시더라도 방을 더럽히는것 말고는 그래도 가출을 하시거나 위험한 일을 하시지는 않는데다가, 밤에는 아들도 집에 있어서 할머니가 설령 발작을 하셔도 감당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
어쨌건 그 부부는 노모를 모시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
...
하루는 며느리가 노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시장에 다녀왔다.
원래 시장을 갈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장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야했고 그럴때 며느리는 낮에는 멀쩡하신 노모에게 늦게얻은 아이를 맡기고 얼른 다녀오곤 했다.
할머니도 늦게 본 손주라 애지중지 하셨고 그들 부부에게도 아이는 그나마 유일한 행복이었다.
며느리가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본 다음 두시간 정도 후에 집에 돌아오자, 아이를 보던 노모께서 장보고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반겼다.
"수고했다, 어서 배고픈데 밥먹자, 내가 너 오면 먹으려고 곰국을 끓여놨다 "
며느리는 곰국을 끓여 놨다는 할머니 말에 갸우뚱했다. 최근에 소뼈를 사다놓은 적도 없는데 노모께서 곰국을 끓이셨다길래 의아해 하면서, 부엌에 들어가보니 정말 솥에서는 김이 펄펄나면서 곰국을 끓이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그 솥 뚜껑을 열어보고는 그자리에서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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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가능하면 담담하게 이 끔찍한 일을 기록하려고 하고 있지만, 다시금 그 장면을 기억하는 내 심장이 부담스럽고,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 뜨거운 솥에는 아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검안을 위해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때 나는 생애에서 가장 끔찍하고 두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장면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나는 나대로 피가 얼어버리는 충격속에서 응급실 시트에 올려진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진 아이의 몸을 진찰하고, 앞뒤로 살피면서 검안서를 기록해야 했고, 또 너무나 끔직한 장면에 차마 눈을 감아버리고 아예 집단패닉 상태에 빠져 스테이션에 모여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혼란도 같이 다독거려야 했다,
아이 엄마는 아예 실신해서 의식이 없었고, 할머니는 그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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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후 이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일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에서 요청한 검안기록에는 직접사인 "심폐기능 정지", 선행사인 " 익사에 의한 호흡부전",간접사인 "전신화상"으로 기록을 남겼고, 내 도장을 찍었다.
아마 그일로 인해 입어야 할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끔찍 했을 것이다,
더구나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 할머니가 받을 고통은 어땠을까..아울러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평생을 겪어야 할 그 잔인하고 끔찍한 고통은 어떠할까..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부디 가족해체만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후의 일에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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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 치매나 기타 노인질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극단적인 가혹함이 이런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자신도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또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리게 된 그 참혹한 장면들을, 더 세밀하게 기억해내지 않기 위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내쳐 글을 적으면서도, 내가 이글을 올린것이 과연 잘한일인지 못한 일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전에 주저앉은 늙은 소는 저쪽 구덩이에 묻었고, 새끼젖소는 질똥싸다 죽어서 태워버리지 않았습니까. 그거랑 몇 마리 죽었던거 빼면 288마리가 맞는데 왜 자꾸 억지말씀을 하십니까. 어르신."
이라고 말하는 아저씨와, 막무가내로 소가 없어졌다는 주인 할배는 한참을 실갱이 하다 돌아갔고 억울한 듯한 아저씨는 분에 겨워 오늘은 형 불러서 농장 비우고 시내나가 밥이나 먹자고 하시더라.
덕분에 간만에 세상 구경 좀 하고 배불리 밥먹고 농장에 돌아오다 문득 떠오르는게 첨에 여기 오기전에 할배가 했던말이 생각났었어.
소가 300마리가 좀 넘으니 둘이서 관리하려면 좀 힘은 들거라던 말...
그래서 아저씨께
"원래 소가 300마리 넘지 않았었나요 그러고보니 3구에 있던 마른 소들이 몇 마리 없어진거 같기도 한데"
라고 했더니
"너는 온지 얼마 안된 놈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하지마라"
라고 다소 이질적인 말투로 말하는 아저씨를 보고서는, 그 때부터 였을거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된 것이...
그 뒤로 며칠이 지나고 이번엔 아저씨 혼자 방 안에서 술을 들이마시더니 또 주사를 부리면서 농장주변을 배회하더라.
그런 아저씨를 보면서 황구는 숨어서 미친듯이 짖어대고...
역시나 다음 날 아저씨가 안뵈길래 이번엔 내가 직접 찾아가서 봐야겠다 하고 산중턱 무덤에 가봤더니 한 손에 낫을 든채로 무덤 옆에서 고이 자고 있는게 아니겠어.
아니 그 무덤에 꿀발라놨나 왜 자꾸 거기 기어가 쳐자는건지...
형에게 그 무덤은 대체 뭔데 왜 자꾸 아저씨가 거가서 자냐고 물었더니, 잠시 머뭇하던 형이 얘기를 해주더라.
"너 오기 전에 최씨아저씨와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있었거든. 여름에 젖소들 방목시키다 밀렵꾼 놈이 쏜 총소리에 소들이 놀라서 산비탈을 떠밀려 내려가는데 하필 그 아저씨가 길목에 있다가 절름발이로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소떼에 밟혀 죽은거야. 수십 마리에 밟혀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더라더라. 가족도 없지 군청에 신고는 했는데 친인척들도 소식이 없어 거기에 묻은거다"
그 때부터 그 아저씨도 술만 먹으면 거가서 나자빠져 있던거란다.
뭐 7년을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정이 오죽했겠냐고..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싶다 생각하고, 2주 정도 별일없이 지냈을거야.
점심먹고 심심해서 밤을 한 움큼 주워다 왔는데 아저씨가 저쪽 마른골짜기 쪽에 개복숭아 나무있더라고... 지금 한창 익을 때라 맛있을거라고 하길래 냉큼가봤지.
근데 골짜기 언덕에 올라서니까 썩은내가 확 올라오더라.
아' 시발 뭐야' 하고 정말 진짜 왠지 모르게 내려가기 싫던거 눈딱감고 내려갔었어.
근데 거기에 죽은 소가 수십마리가 쌓여있는거야.
와 진짜 지금생각해도.. 완전 식겁해서 골짜기 흙벼락을 미친듯이 기어올라갔다.
돌아가서는 아저씨한테 개복숭아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하고, 그 죽은 소들 뭐냐고 물으려다 진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돌려물어봤다.
'전에 죽었던 소들 어따 묻었어요?'
라고 그러니 아저씨가 왜 전에 두 마리는 같이 묻지 않았냐고... 농장 주변 곳곳에 묻었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그럼 그 소들은 대체 뭔지...
전에 소들 전염병 걸린 적 있었냐고 물었더니 것도 아니라고...
안그래도 그 전에 찜찜했던 일이 있었는데 같이 묻었던 반쯤 썩은 소가 아 침나절에 완전히 파헤쳐져서 한참 떨어진곳 에 나뒹굴러 있던것도,
첨 왔을 적엔 좀 부실하게 태어나서 겨우 일어서는 산 새끼송아지 눈알을 까마귀들이 파먹고 있던 것도 그렇고(파먹히던 새끼소는 체념한 듯이 앉아서 가만있더라. 기운이 달렸던것지... 다음 날 바로 죽더라)
아 그리고 내가 자는 방 벽에 여기저기 낙서에 지저분한게 묻어 있었는데, 머리 맡에 써있던 낙서 중에
'사방에서 음기가 솟우치니 내 정신이 미묘해지어다'
'너희는 무슨 죄로 이곳에 태어나 살고 죽는 것이냐'
이런 말들이 문득 떠오르니까 소름이 쫙 돋는거 있지.(나도 그 옆에 sex라고 썼었음)
그래서 여기는 뭔가 있을데가 아니다 싶어 마음의 정리를 해두고 있었지.
그 날이었어. 바로 그 날.
또 혼자 방 안에서 술나발을 불더니 여지없이 주사를 부리기 시작하더라.
전에는 시끄러워서 짜증만 났는데 이젠 그게 아니거든, 혹시 몰라서 과도 하나 들고서는 그 아저씨 행적을 쫒아봤어.(그 때까진 스릴만점이었다)
욕짓거리 하면서 돌아다니다 2구 구석에 묶여있는 황구 2세를 짖어댄다고 마구 차더니 이 개새기가 반항한다고 또 패고 하다가 사료창고로 가더라.
거기서 사료 한 푸대를 꺼내더니 3구 마른소들 구유에 붓는데, 소들이 완전 겁에 질려서 사료는 안먹고 '우우우 우우워' 하고 울어대는거 있지.
'처먹어 처먹어'
하면서 돌 던지고 똥긁개 봉으로 우사 주변을 돌면서 막 찔러대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판타지한 일이었지.
3구 소들이 왜 삐쩍삐쩍 말라가나 했었다.
그러던 아저씨가 트럭을 끌고 와서 건초 묶을 때 쓰던 밧줄로 소 한 마리를 끌어내더니 안가려는거 트럭으로 질질 끌고 산 길을 내려가더라.
얼마 안가서 차 세우고 느닷없이 함마로 머리를 뻑 하고 치더니 소가 그대로 옆으로 뻗으니까 낫이랑 목칼인지, 정글칼 같은거 꺼내서 반항 못하고 울어대는 소를
"니가 날죽여!" 니가 날죽여!"
하면서 마구 찌르고 째고 돌로 찧어대고...
소는 잠잠해지고 한참을 그러다가 트럭으로 또 질질 끌고가더니 그 전에 내가 봤던 죽은 소들 있던 골짜기에 끌어다 버리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봤다.
아무리 강심장인 나라도 진짜 그 상황에서 누가 툭 건들기만해도 오줌을 지렸을거다.
(이미 조금 지렸다고는 쪽팔려서 말 못한다)
그러던 아저씨가 돌아와서 다른 칸에 있던 소를 3구에 채워넣고 착유실가서 태연히 샤워를 하고서는 농장집으로 내려와서 내 집 창문을 쓰윽 보더니 문고리를 한 번 철컥하고 돌려보는데...
완전 겁에 질려갖고 방 안에서 자는 척하고 있던 난, 진짜 그 때의 그 공포란...
이불 속에서 과도 꼬옥 쥐고 덜덜 떨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니 우사 앞 길을 통해 또 어딘가로 가길래 과도랑 짱돌까지 하나 챙겨서 다시 쫒아나섰지.
딱 보니까 그 무덤으로 가는 길이더라.
우사주변은 밤에도 밝지만 그 곳을 벗어나면 완전 칠흙인데다 더는 무서워서 쫒아갈 엄두도 안나고 방으로 되돌아와 문 걸어 잠그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아침 일찍 짐 전부 싸갖고 트럭 몰고 미친듯이 산비탈을 내려오는데 역시나 그 무덤앞에서 아저씨가 자고 있더라.
아침 일찍이라도 어둑한데다 간밤에 그 꼴을 생각하니 또 오금이 저려서 비포장길을 차가 뒤집힐 정도로 몰고 지나치려는데 차 라이트가 비추는 순간,